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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모든 축구 팬들이 놀란 철인 6호

by nukin 2024. 9. 30.

안녕하세요 오늘은 철인 6호 별명부터 굉장한 압도감을 주는 (현)국가대표 코치 김진규 코치님에 대해서 소개해보겠습니다.

출처: 케이리그

김진규의 초창기: 엄청난 압도감

출처: 네이버 블로그

김진규 1985년 12월 16일,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진규는 어린시절부터 주목을 받으며 빠르게

전남드래곤즈와 프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전남드래곤즈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2005년에 주빌로 이타와 일본무대로 이적하면서 2006 FIFA 독일 월드컵에서 발탁되면서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FC서울:  모두가 놀란 깡다구 중앙수비수

출처: 풋볼리스트

 

김진규는 2007시즌 j리그에서 전남으로 다시 복귀를 한 후 반시즌 활약후 곽태희 선수와 트레이드 되면서 FC서울로 옮겨갔고 역시나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서울팬들 수호신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김진규는 특히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의 활약이 인상 깊다. 그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준결승에 올랐고, 김진규는 중요한 경기들에서 수비진을 이끌며 팀을 안정적으로 지켜냈다. 그는 공중볼 경합에서의 뛰어난 능력과 전술적인 이해력으로 상대 공격수를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2011년 다롄스더 중국무대에 진출했지만 반시즌만에 중국생활을 청산하고 j리그로 방포레 고후로 이적했지만 역시 오래머물지 못하고 계약만료된후 다시 FC서울로 복귀했다. 김진규는 아디와 김주영 김동우와 좋은 합을 보여줬고 주장완장까지 달면서 FC서울에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구단도 그에 보답해 은퇴식까지 해주면서 아름다움을 선사하였다.

 

대전시티즌:  한물간 수비수

출처: 인터풋볼

김진규는 태국에서 계약만료된후 복귀를 할까 은퇴를 할까 고민을 하였지만 대전에 부름끝에 대전시티즌에 합류하였다 김진규 영입은 2007년 고종수 이후 네임드 있는 선수였고 대전 팬들이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대전 합류후 바로 주장을 달면서 책임감 있는 수비를 보여주었다. 시즌 전반기동안 대전 시티즌의 주전 센터백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있지만 노쇠한 기운이 역력해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장면이 자주 빚음과 동시에 앞서 말한 대로 발이 느리다는 단점을 그대로 보이며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6월 26일 서울 이랜드 FC전 이후 심한 부상을 당해 사실상 시즌 아웃되었으며, 10월 29일 안산 그리너스 FC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모처럼 교체 출장하였다. 하지만 역시나 노쇠화가 있었고 그걸 이겨내지 못하며 은퇴 수순을 밟았다

 

국가대표:  어린나이에 데뷔

출처: SPN

각급 청소년 대표를 경험하고 성인 대표팀 데뷔는 조 본프레레 감독 부임 초기인 2004년 7월 14일 트리니다드 토바고 전에서 했다. 당시 같은 소속 구단 동료였던 베테랑 김태영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그 이후 2005년부터 박재홍, 박동혁과 함께 3백의 한 축으로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기회를 부여받았고, 2005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 그림같은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2006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 선임 이후에도 대표팀에 눈도장을 받으면서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주전 센터백으로 출장하였습니다.

 

코치 경력:  커리어 승승장구

2020년 6월 3일 FC 서울이 김성재 수석 코치, 윤희준 코치와 결별하고 FC 서울의 U-18인 오산고등학교 축구부를 지휘하던 김진규 코치를 합류시켰다. 과거 대표팀과 서울에서 사제의 연을 맺었던 김호영 수석 코치와 함께 합류했다.

2023년 8월 22일, FC 서울 안익수 감독의 사임에 따른 김진규 수석 코치의 감독 대행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대행이라고 해도 은퇴한 지 6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정식 대행으로 선임된 것은 상당히 빠른 편이다. 그만큼 리더십과 지도력이 있다는 것이지만 관건은 다혈질적인 성격과 너무 젊은 나이라는 것이 문제점이었다 나쁘지않은 지휘력을 보인 이후 거취가 관심에 올랐다. 정규 감독 계약 가능성도 일부 언급되긴 했지만 결국 12월 14일, 김기동 감독이 공식 선임되면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후 서울 전력 강화 실장을 하면서 좋은 평을 받았지만 국가대표에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 코치로 합류하면서 자신에게 더욱 좋은 경력이 쌓일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김진규는 많은 구설수도 오르고 타팀 팬들에게는 굉장히 거친선수였지만 자기 구단팬들에게 누구보다 사랑받는 선수였고 은퇴후 코치가 되면서 팬들에 사랑을 더욱 많이 받는 김진규가 되었으며 지금은 푸짐바오 등 웃긴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